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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31_EPA News <전시장으로 옮겨 온 기후범죄 재판소 : "멸종 전쟁" 제14회 광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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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숲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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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Court for 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 : 멸종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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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4월 5일에 대단위 막을 올렸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타이틀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이다.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가진 물을 은유이자 원동력, 방법으로 삼고 이를 통해 지구를 저항, 공존, 연대와 돌봄의 장소로 상상해 보려는 의도이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오랜 시간에 걸쳐 스며드는 부드러움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물의 힘을 표본으로 삼아, 이런 힘이 어떻게 분열과 차이를 포용하는지 모색해 본다. "세상에서는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도덕경 78장)는 의미의 ‘유약어수’에서 차용하여, 이번 비엔날레는 이질성과 모순을 수용하는 물의 속성에 주목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에 깊이 침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에 나름의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하는 예술의 가치를 탐구한다. 전시는 오는 7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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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속성 닮은 동시대 미술 실천 다양성 구현

- 세계 각지 79명 참여작가, 40여 점 신규 커미션과 신작 최초 공개

- 전통, 환경, 이주 등 동시대 이슈들에 대한 예술적 대안

- 외부 전시 공간과 상응하는 장소 특정적 작품 등 창조적 실천의 장

 


이번 비엔날레의 관람 포인트 중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Gwangju Biennale Pavilion)을 꼽을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은 한국과 세계 미술기관의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2018년 시작했다. 미술의 도시 광주에서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유수의 문화·예술기관들은 차별화된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와 기획자들이 포착한 현대사회의 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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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순 작품, 코 없는 코끼리. 본 전시 전시장 

 

2023년 제14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에는 캐나다, 중국, 프랑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폴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우크라이나 총 9개국이 참여한다. 광주의 문화명소들은 이제 전 세계의 미술 담론을 다루며 전시는 물론 심포지엄과 같은 학술교류뿐만 아니라 강연, 워크숍과 같은 관람객 친화적인 공공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 이중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 파빌리온의 전시를 소개한다.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Court for 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 : 멸종 전쟁


전시장소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 광주시립미술관 제1전시실 & 제2전시실 

          관람시간 10:00-18:00 (공휴일 휴관)

참여기관 : 프레이머 프레임드(Framer Framed Presents)

국내기관 : 광주시립미술관

기획자 : 조주현(큐레이터, 연구자)

참여작가 : 요나스 스탈(Jonas Staal), 라다 드수자(Radha D’Sou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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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서울의 한 당사 앞, “신공항=기후재앙”, “신공항=대멸종”과 같은 피켓을 든 시위대가 기후 불복종 재판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다수 청년, 청소년 활동가들의 연대로 이루어진 이 시위대는 가덕도 신공항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새만금 신공항, 삼척의 포스코 석탄발전소, 홍천과 횡성의 송전탑, 청주와 합천 등에 지어질 민간 가스발전소 등 국가 주도의 개발사업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이 의도적으로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살아가는 터전을 빼앗았다고 주장하며, 이를 ‘기후생태학살(ecocide)’이라 명명한다. 환경(Echo)과 집단 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의 합성어인 에코사이드(ecocide)는 인간만이 지구의 거주자(inhabitants)가 아니라 비인간(nonhuman) 역시 지구의 정당한 거주자이며 이들을 포함한 다종간 정의(multispecies justice) 구현을 주요한 가치로 실천하는 오늘날의 활동가들에게 무엇보다 중대한 범죄 중 하나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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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사이드(ecocide)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처벌할 수 있는 국제범죄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으나, 현재까지 ICC의 법적 규범과 여러 제약으로 인해 그 실효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며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물론 최근 국가마다 기후소송이 꽤 빈번하게 이루어지면서 국제범죄로 다뤄질 가능성과 기대감이 높아지긴 했으나, 지금의 법을 개정한다고 실질적으로 ‘기후생태학살’ 범죄를 처벌할 수는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의심은 ‘기후생태학살’이 전쟁이나 침략 등 여타 범죄와 달리,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장기간 환경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행위’라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즉, 기후생태학살은 한 세대 단일한 종에만 연루되는 범죄가 아닌, 여러 세대에 걸친 다종적 얽힘에 대한 이해가 필수 불가결한 범죄 유형으로 기존의 근대 법 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법적 틀이 요구되는 것이다. 


네덜란드 작가 요나스 스탈과 인도 출신의 변호사이자 학자, 활동가인 라다 드수자가 설립한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인간 및 비인간 공동체의 존재를 위협하는 정부와 기업의 기후 범죄를 다루는 ‘인간 너머의(more-than-human) 재판소’이다. 예술과 프로파간다,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다루며 ‘동지적 타자’로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을 포괄하여 다양한 공동체와 연합을 구축해 정치적 변화를 이끄는 작업을 해온 요나스 스탈은 “권리라는 것이 개인의 사적 소유가 아닌 상호 관계 그 사이(간격)에 존재한다”는 주장을 담은 라다 드수자의 저서 『권리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what’s wrong with rights?』(2018)를 읽고 이 대안 재판소의 형태를 구상했다. 이 책에서 드수자는 계몽주의가 발명한 ‘인권’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한 근대 법이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제도화하여 살아있는 세계를 재산으로 전환하고, 이후 유럽의 식민지 개척과 세계자본주의 건설을 위해 대량 절도, 살인, 노예화, 자원추출, 인간 및 비인간 세계에 수많은 문화적 대량 학살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특히 근대법 체계에서 국가와 기업, 군대, 경찰 등을 포함하는 전문적 관료제도가 인간에게 부여되는 것과 같은 권리로서 법인격을 갖게 되었을 때, 자연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날카롭게 분석하며, 권리가 개인의 재산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인간 간, 인간과 비인간 간, 또는 비인간 간의 관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쉽게 말해, 강의 권리가 침해되면 현재와 미래에 그 강과 상호 의존하여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과 인간의 권리도 침해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요나스 스탈은 근대적 권리 개념이 상호의존성의 원칙으로 대체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 법정의 형태를 상상하고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이 스케치를 기반으로 스탈은 건축가 폴 키퍼스(Paul Kuipers)와 함께 ‘인간 너머의’ 다종적 재판소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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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생한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는 현행법 체계의 기초가 되는 선형적이고 개별화된 서술이 작동할 수 없는 구조로서, 인간이 아닌 조상을 포함해 모든 존재를 동지로 인식하게 한다. 국가와 기업이 저지른 기후범죄를 기소하기 위해 지역 원주민이나 환경단체들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여 증거를 제공하고,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멸종된 동식물이 법정 여기저기 설치된 피켓과 깃발들에 이미지가 새겨져 기후범죄의 증거이자 증인으로 자리한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언어로 동지라 불리면서 집단적 투쟁의 주체가 된다. 멸종된 동식물이나 화석 등 비인간 동지들이 증인이 되는 다종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드수자와 스탈은 CICC가 사변적 법정과는 확실히 구분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땅, 그리고 현실에 뿌리를 둔 대안적 제도임을 강조한다. 정부와 기업의 범죄에 대해 실제 법률가와 전문가들이 검사 그룹으로 참여하고 드수자가 작성한 ‘세대 간 기후 범죄 법(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 Act)’에 기반해 대중이 판결을 내린다. 이 법은 상호 의존적인 생명체의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종의 멸종을 주도하는 근대 법을 무효화하고자 제정된 대안적 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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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서울 문화비축기지에 대규모로 설치되었던 CICC에서는 &#8249;재판정에 선 법(Law on Trial)&#8250;이라는 타이틀로 ‘근대 법’을 재판에 회부했다. 과거 서울시민들을 위한 석유 저장고였던 전시공간은 그 자체로 화석 자본주의가 저지른 범죄의 증인이자 증거 현장이었으며, 폐기된 오일탱크, 배럴 등 화석 산업의 잔해 속에 구축된 법정에서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관통하는 세대 간 상호 의존성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법적 틀을 제안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에 설치되는 CICC에서 드수자와 스탈은 식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의 자연과 민족에 대해 벌여온 폭력을 ‘멸종 전쟁(Extinction Wars)’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따른 군사주의나 군사산업 복합단지를 통해 자행된 기후범죄를 기소하는 공판이 이루어지며 여러 활동가, NGO, 예술가, 예술기관, 법학자, 전문가가 증인으로 참여해 국가와 기업의 단합이 어떻게 군산 등 해당 지역의 생태 및 공동체를 파괴하고 평화, 환경, 생계를 위협하며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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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주머니, 석유 배럴, 철조망 등으로 이루어진 군사 전선과 전쟁과 산업화로 인해 멸종된 동물 종들의 이미지가 융합되어 구성된 법정에서 한국의 활동가들과 주민들은 군사화의 영향에 맞서 싸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비판적 관점에서 “무엇이 진정한 안보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서울을 경유해 광주에 도착한 ‘인간 너머의(more-than-human) 재판소’ CICC는 이제, 지구 상의 모든 존재들을 이 법정으로 초대한다. 살아있는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공동의 투쟁을 함께하는 ‘동지(Comrade)’들은 새로운 법과 제도로 군사경제에 뿌리를 둔 한국의 식민지 역사가 이 땅에 거주하는 인간과 비인간 공동체의 환경과 신체를 통해 만나는 지점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증가하는 군국주의의 영향을 재고하도록 다층적 내러티브를 만들어 낼 것이다. (기획 : 조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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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광주비엔날레

사진 : 최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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