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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42_EPA Artist_문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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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숲과나눔

본문

 

고라니가 우리를 바라본다.


“이것은 고라니 초상사진 연작이다.

처음으로 길 위에서 사슴을 만났던 날, 나는 깨달았다. 고라니와 노루 둘 다 이름만 익숙할 뿐 서로 어떻게 다른지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아는 것은 고작 이름뿐이었는데, 그간 어떻게 그들을 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일까?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어쩌며 하나의 신비를 하나의 단어로 덮어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선희 작업 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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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 개인전, <이름보다 오래된> 포스터 이미지


우리에게 친숙한 고라니, 하지만 이름만 알고 있었지, 고라니의 생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미술관에 등장한 고라니를 보며 비로소 검색을 해본다. 


“고라니(water deer)는 한국·중국 동부에 분포하는 사슴 중 하나로, 소목 사슴과에 속한다. 보노루, 복작노루라고도 한다. (…) 중국에서는 멸종 위기종이지만 전 세계 개체 수 중 60%가 서식하는 한국에서는 수렵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한반도에서는 천적인 시베리아호랑이와 아무르표범, 한국늑대 등이 멸종되면서 멧돼지, 청설모, 너구리와 더불어 수가 증가하고 있다.”(위키피디아, 고라니)


10년간 고라니를 기다리고 만나고 대화하며 촬영한 문선희 작가. 그의 전시《이름보다 오래된》(일우스페이스, 2023년 10월 18일부터 11월 16일) 에서 본 고라니는 동물원에서만 언뜻 보았기에 그동안 헤아릴 수 없었던, 생경함 자체였다.《이름보다 오래된(Older than name)》이라는 전시 타이틀은 자세히, 오래 볼수록 새롭기만 한 고라니와 작가와의 관계를 드러낸 말이다. 사진 속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동물의 눈은 깊은 우물 같아 빨려 들어갈 듯하다. 낯설고 친밀한 가운데 생성되는 유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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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선희 개인전, <이름보다 오래된>, 전시 장면 사진, 최연하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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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선희 개인전, <이름보다 오래된>, 전시 장면 사진, 최연하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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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선희 개인전, <이름보다 오래된>, 전시 장면 사진, 최연하촬영


 

2023년 제13회 일우사진상 다큐 부분을 수상을 기념한 이번 전시에서 문선희는 고라니 초상 사진 프로젝트인 <라니 Water Deer> 시리즈를 선보였다. 고라니 자체의 고유성을 드러내기 위해 배경은 생략하고 얼굴 정면을 화면 정 가운데에 배치했다. 대상에게 다가가는 작가의 카메라가 조심과 조신을 다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뿐.

서로를 의식할 때 흐르는 긴장감과 떨림 속에서 

고라니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순간,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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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 라니101 Water deer101_80x60cm_Pigment print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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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 라니109 Water deer109_80x60cm_Pigment print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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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 라니111 Water deer111_80x60cm_Pigment print_2022 

 

 

"지난 10년간 200여 마리의 고라니를 만났다. 처음 고라니 초상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길어도 3~4년이면 이 프로젝트를 매듭지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50여 점의 초상사진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운 좋게 기회를 얻어도 야생의 존재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겁 많은 고라니들에게 폭력이나 다름없는 플래시를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에게는 높은 선예도의 사진을 얻는 것보다 고라니의 심리적 안정이 더 중요했다. 자연광만으로 촬영하려면 고라니 쪽에서 나를 지긋이 들여다봐야 했다. 고라니들이 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져 갔다. 변화는 느리고 미묘하고 기적 같았다. 서로를 의식할 때 흐르는 긴장감과 떨림 속에서 고라니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순간,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문선희 작업 노트에서) 


 

문선희 작가의《이름보다 오래된》전시는 저마다 특별한 고라니의 초상사진을 보여주며 고라니를 새롭게, 다시 바라볼 것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왜냐면 인간이 ‘고라니’로 부른 그들은 무엇으로 환원할 수 없는 낯설고 불가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고라니의 눈빛은 ‘말’이고 ‘행위’이고 ‘마음’이었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형형하게 빛나는 특이한 고라니의 세계를 낱낱이 펼친 문선희의 생태의식에 감사한다.  


 

 

 

문선희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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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문선희 작가, 최연하촬영

 

대표작으로 ‘발굴 금지 기간’이 해제된 구제역, 조류독감 매몰지 100여 곳을 살피고 기록한 <묻다>(2015), 5.18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살았던 동네와 기억을 엮어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2016), 지난 15년간 고공농성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담아낸 작업 <거기서 뭐하세요>(2019)가 있다. 2022년에는 고라니 초상사진 연작인 <널 사랑하지 않아>를 발표했다. 


주요 개인전으로《이름보다 오래된》(2023, 바아아트 갤러리),《널 사랑하지 않아》(2022, 신세계갤러리) 등이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2023, 광주여성가족재단), 《무의식의 그림자》(2021, 드영미술관), 《광주비엔날레특별전 MayToDay》(2021, (구)국군광주병원), 《생태조감도》(2020,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 등 기획전에 참여했다.「이름보다 오래된」(2023, 가망서사) 외에 4건의 출판물이 있으며 광주시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문선희 작가의 다른 작품은 에코포토아카이브(ecophotoarchive)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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