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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_02 오래된 예언 _ 황규태의 묵시록적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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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숲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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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예언 _ 황규태의 묵시록적인 사진

 

글: 최연하(EPA curator)

 

 

 

예술계에서 아직 환경위기(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1960년대에 지구에 닥칠 환경문제와 재난 상황을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통찰하며 ‘오래된 예언’을 했던 작가가 있다. 바로 한국 사진의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던 황규태 작가이다. 황규태 작가는 초기부터 현재까지, 새로운 사진 형식에 급진적인 메시지를 담아 인류에게 닥칠 일들을 예언해 왔다. 1960년대에는 작품 창작의 프로세스로 몽타주기법과 필름을 태운 후 인화한 ‘버노그래피(Burnography)’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원자폭탄’과 ‘AI’와 ‘지구온난화’ 같은 주제를 직접 찍을 수(표현할 수) 없었기에 새로운 형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는 모더니즘 사진의 엄정한 형식을 중시하던 시기여서, 필름에 손상을 입히거나 이미지를 조작하는 것은 ‘반(反) 사진적’인 행위로 금기시된 때였다. 황규태 작가의 주요작품을 따라가보자.

 

첫 번째 작품은 1969년에 제작한 <불타는 도시>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미국에서 컬러 현상소에서 일하던 중 심심풀이 장난처럼 찍은 필름을 태워보다가, 이것을 프린트 해보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만 레이(Man Ray)’가 자신이 즐겨 하던 기법에 본인의 이름을 따서 레이오그라피(Rayograpy)’라고 했듯이, 필름을 태워서 만든 사진이니 버노그라피(Burnography)’라고 명명했다. 이 사진은 실제 1960년대 LA의 도심을 찍은 사진인데, 태워서 인화하고 보니 마치 원자탄이 떨어진 것처럼폭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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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규태, <불타는 도시>, 1969

 

 


 

원폭에 대한 황규태 작가의 상상력은 작품 <트리스티나의 세계>(2010)에서도 도드라진다. 이 작품은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Wyeth)가 1948년에 완성한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를 차용한 것이다. 원작에는 소아마비로 걷기가 힘든 크리스티나가 집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절박한)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와이어스는 집으로 갈 수 없는(혹은 집이 없거나 쉴 곳을 잃은)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작품에 등장한 크리스티나(Christina)는 이후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황규태는 크리스티나가 바라보는 곳 – 집이 원폭으로 폭파되어 버섯구름으로 뒤덮인 참혹한 광경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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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와이어스(Andrew Wyeth),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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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톰슨(Alex Thompson)의 사진, 2005, Photo via Flickr

앤드류 와이어스의 작품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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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크리스티나의 세계>, 2010

황규태는 크리스티나가 바라보는 곳, 집이 원폭으로 폭파되어 버섯구름으로 뒤덮인 참혹한 광경을 담았다. 

크리스티나는 과연 집에 갈 수 있을까.

 

 

 

<행성>(1995-2000)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화성(Mars)에 갔을 때 찍은 지구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런데 우리의 후대들도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를 볼 수 있을지. 칼 세이건(Carl Sagan)의 말처럼 '아름답고 연약한 푸른 점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막화‘되어 보이는 불모의 행성이 되었다. 이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도 없겠지.” 황규태의 <행성>은 사막화 또는 지구온난화로 야기될 지구의 위기에 대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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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행성>, 1995-2000 

 

 

 

 

황규태 작가의 작품에는 환경위기를 비롯한 인류세의 위기에 대한 묵시록적인 메시지가 작품 곳곳에서 출몰한다. <도시의 인상Ⅰ>(1969)에서는 빅브라더(big brother)가 도시()를 감시, 통제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도시의 인상 Ⅱ>(1969~1970)은 대도시의 약자 늙은 타이탄을 통해 인간 소외를 눈을 부릅뜨고강조한다. 석유를 둘러싼 헤게모니는 <성배>(2010), <나비들의 이동>(2010)에서는 부위별로 상품화되어 끝없이 팔려나가는 의 운명을 할리우드의 간판처럼 세워 자본의 성지가 곧 생명의 무덤임을 역설한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인간의 욕망은 뭇 생명의 안위는 고려치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주범이 되어 할리우드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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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도시의 인상Ⅰ>, 1969년 

“60년대의 LA다운타운이다. 두 장의 빌딩 슬라이드 필름을 겹치고 아래쪽에 눈을 몽타주했다. 도시는 핏발 선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수억의 스미스(<1984>의 주인공)를 감시하는 빅브라더의 텔레스크린일까?”(작가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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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도시의 인상 Ⅱ>, 1969~1970년

“1960년대 LA. 그 시절 현대식 유리 건물이 날아갈 듯이 가볍게 서 있는 것을 슬라이트 필름으로 찍어 두 장 대칭으로 겹치고, 

그 밑에 머리가 다 빠진 노인의 오수에 든 모습을 찍어 몽타주 했다. 마치 큰 빌딩을 등에 지고 힘겨워 하는 ‘늙은 타이탄’ 같다.” (작가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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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성배>, 2010

전쟁도 불사하는 에너지 확보 경쟁은 인류의 미래를 불안케 한다. 석유를 담은 드럼통을 성배로 전치시켰다.” (작가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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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나비들의 이동>, 2010 

육체의 부위별 맛과 가격의 등급표. 등심, 안심, 갈비, 내장. 끊임없이 먹어댄다. 정말 먹어댄다. 죽여놓고 가짜다 진짜다 싸워댄다. 

시원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맛의 지형도를 세웠다. 멀리 산에 'Hollywood' 간판처럼 세워놓았다.” (작가 노트)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구촌의 환경 이슈에서 첨예한 갈등과 문제를 일으킨 키워드들이 이미 황규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팔순이 넘은 황규태 작가의 생태학적 상상력은 버섯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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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작가, 권혁재(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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