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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_01 온산병 사태를 사진으로 기록한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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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병 사태를 사진으로 기록한 청년들 

 

글 : 최연하(EPA Curator)

 

 

 

1985년에 제기된 온산공단 주민의 집단 질병 상황은 6, 70년대에 급격하게 성장한 우리나라 산업공단의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주민 피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정부와 학계는 공해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결국은 대규모 주민 이주 조치가 시행되었던, 국내 환경오염 사건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 당시 피해규명과 주민 지원에 참여했던 많은 청년들이 환경운동에 투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반공해운동이 조직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환경운동 측면에서도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온산병 사태 당시 관련 기록은 제한적으로나마 남아있고 일부 관심 있는 언론 등을 통해 추후 추적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의 경우는 매우 제한적인 소재와 형식에 국한되어 있고 양적으로도 극히 적어, 당시 상황을 유추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숲과나눔의 환경사진아카이브에 당시 사진을 전공하던 청년들에 의해 기록된 온산병 사태 관련 수백 점의 사진 자료가 수십 년 만에 새롭게 발굴, 아카이빙 된 것은 학술적으로나 환경운동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아울러 환경사진아카이브 구축의 의미와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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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메멘토모리>, 1990-2003

쓰레기로 황폐화 된 마을에 어린아이가 코를 막은 채 걸어가고, 뒤로는 온산공단에서 뿜어나오는 매연이 보인다.

 


 

당시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 중이던 이상일은 과제를 하기 위해 온산공단으로 향한다. 이상일에게, 다큐멘터리 수업 시간에 주어진 과제는 온산공단에 중금속 카드뮴으로 인한 이타이이타이병이 발생했다고 하니 촬영하라!”라는 것이었다. 소위 추측성 카더라~’ 뉴스가 난무하던 때였다. 사진 학도들에게는 또 다른 중금속인 수은으로 인한 미나마타(Minamata)병을 취재한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는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미나마타병은 원인 규명에 참여한 의사, 변호사들의 노력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지만, 유진 스미스의 사진 한 장이 세상에 준 충격과 메시지는 대단했기 때문에 온산’ 뉴스를 접한 사진가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이상일은 오랫동안 온산 공단을 기록했고, 그 결과물은 이상일 작가의 대표작품인 <메멘토모리> 시리즈로 완결이 된다. 그동안 책과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 이상일 작가의 작업이 20여 점 정도였는데, 이번 숲과나눔의 환경사진아카이브에서는 200점을 추가로 발굴·정리하여 당시 온산 지역의 상황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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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메멘토모리>, 1990-2003 

온산면 당월리 버스정류장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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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메멘토모리>, 1990-2003

아파트 기공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 골목에서 어린아이가 장난감총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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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판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 Tomoko in bath, 1972 

환경운동사에서 사진 기록의 힘을 널리 알리는데 발화점이 된 유진 스미스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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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졸업 전시에 출품할 사진을 위해 온산 공단을 촬영한 이기명의 작업은 <어구를 거두는 사람들>로 정리가 됐다. 이기명은 본인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990년에서 91년까지, 온산 주민들이 뿔뿔이 고향을 떠나가는 모습을 기록한 작업이다. 10여 년 동안 공해와 싸우면서 병들어가는 바다와 농토를 지켜보던 공해 파수꾼이 된 당월 주민들은 공해에 찌든 불편한 심신을 이끌고 불확실한 내일을 염려하며 어구를 거두어야 했다. 정부는 유례 없이, 당월리를 포함한 온산면 1만여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키는 대규모 계획을 시행하였고 주민들은 고향, 오염된 바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온산은 이기명의 다큐멘터리 사진 속에서 미스터리로 봉합된 채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적막한 마을로 등장한다. 이기명은 엄중하고 면밀한 촬영을 위해 핫셀블라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온산의 절규를 절제된 구도로 담아냈다. 공장 폐수를 촬영하다가 회사 측 직원들에게 필름을 빼앗길 뻔하는 위기를 넘기고 긴 세월 동안 잘 보관한 노력 덕분에 이 사진들은 환경사진아카이브에 합류할 수 있게 됐고, 30여 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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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어구를 거두는 사람들>, 1990~91년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나오는 해녀 뒤로 공장 굴뚝에서 매연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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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명, <어구를 거두는 사람들>, 1990~91년 

펄프류가 방류되어 기이한 형상을 보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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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명, <어구를 거두는 사람들>, 1990~91년

이주를 앞둔 주민 옆에 이삿짐센터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뒤로는 울산과 남창으로 향하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우연일까. (재)숲과나눔의 <환경아카이브 풀숲>과 <환경사진아카이브> 구축을 기획하고 추진한 장재연 이사장 역시 당시에  환경운동 진영의 온산병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관련 기록과 자료를 지금까지 보관해왔다. 장 이사장이 직접 작성한 온산지역이 오염됐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 위해 학술적 근거를 정리한 문건,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의 허위를 분석한 반박문, 정부 역학조사에 대항하는 설문조사표를 만들기 위한 사전 자료, 주민설문 분석 결과 등의 날것 자료들이 당시 상황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온산병 사태에 관심을 갖고 대책 활동을 했던 대학원생, 작품 활동을 했던 청년 사진학도들이 기록들이 문서와 사진으로 한 곳으로 모이고 있다. 당시에 온산병 사태가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였고, 억압된 시절을 살아가던 청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온산병 사태 관련 사진들은 <환경사진아카이브>가 <환경아카이브 풀숲>에 정리된 문서자료와 함께 시대적 상황을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동반자 역할뿐 아니라, 사진만의 특별한 ‘기록의 힘’과 ‘상황을 전달하는 예술 매체로서의 힘’을 갖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 과정의 일단을 책임지고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사진 큐레이터로서도 아주 특별하고 가슴 벅찬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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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연, 온산의 환경오염 심각성을 입증하기 위해 작성한 국내외 오염 수치 정리,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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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연, 온산병 정부역학조사 반박문,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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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연, 온산병 주민설문조사 초안,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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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연, 온산병 주민설문조사 결과,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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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온산병 역학조사를 알리는 현수막 (1985년, 사진 촬영자 미상, 자료 제공 장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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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온산병 역학조사 채혈 장면 (1985년, 사진 촬영자 미상, 자료 제공 장재연)

 

 

 

 (글 작성에 큰 도움을 주신 장재연이사장님과 이상일작가님이기명선생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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