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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16_EPA Artist_동물사진가 박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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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숲과나눔

본문


박찬원 사진의 ‘울림과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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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소우주'의 탄생

 

 

 

창작의 과정에서 ‘울림과 떨림’을 경험할 수 있다면 작가의 세계는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무언가 다가와 나를 울리고 내가 바르르 떨리는 순간은 사랑의 순간이고 탄생의 시간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정체 모를 어떤 것에 이끌려 화답하는 동안 작품도 서서히 잉태한다. 생명체를 살아있게 하는 아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정동(affect)이야말로 생명의 힘이고 행위의 시작인 것이다. 특히 ‘사진’은 입자가 부딪히고 파동으로 접속하는, 피사체와 촬영 주체 간의 감응(感應) 정도에 따라 사진의 내용과 깊이가 달라지기에, 감동의 용적률이 넓을수록 좋은 사진이 될 가능성도 높다. 이는 모든 예술작품을 관람(수용)할 때의 경험과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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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꿀 젖 잠>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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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꿀 젖 잠>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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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꿀 젖 잠>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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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꿀 젖 잠> 시리즈에서 

 

 

 

박찬원 작가의 책 『사진, 울림 떨림』(라의눈, 2022)을 천천히 음미한다. 작가가 12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낸 책이다. 첫 전시를 연 2014년부터 전시와 함께 『사랑한다 루비아나』(류가헌, 2020),『말은 말이 없다』(고려원북스, 2018),『어떤 여행』(고려원북스, 2017),『꿀 젖 잠』(고려원북스, 2016) 등 벌써 여섯 권의 책을 상재했다. 사진 작품과 함께 실린 작가의 글은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특유의 단단함과 담백함으로 이뤄진 아포리즘이다. 작가의 책 곳곳에서 반짝이는 ‘떨리는 문장’들을 따라가며, 작가와 사진의 피사체인 동물이 일체가 된 놀라운 순간을 만난다. 


 

          “사진을 찍는 동안은 하루살이, 나비, 거미는 물론 나무나 풀, 염전의 소금 같은 무생물도 신성(神性)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작품의 주인공인 돼지, 말 등 동물들은 물론 인간과 동격으로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 새 친구를 사귀듯 호기심을 갖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마음을 연다. 

           그 덕분에 돼지 사진을 찍으며 돼지 나라를 여행했고 지금은 말 사진을 찍으며 말의 나라를 여행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어떤 여행』, p.44) 


           “말은 말을 많이 하지 않으니 귀와 눈이 살아 있다. 말은 행동으로 새끼를 가르친다. 말의 소리는 본능의 소리다. … 

            말들이 풀을 뜯는 모습은 땅에 키스하는 것 같다. 감사의 키스, 행복의 키스다. … 말과 사귀려면 기다림에 익숙해야 한다. 

            나 자신도 잊고 가만히 있으면 옆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말이다. … 말과의 대화는 호흡으로 한다. 

            말과의 관계는 이심전심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에서 시작한다. 말과 사귀려면 말의 언어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 …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말. 감정이 말이 아니라 몸에서 배어난다.” (『말은 말이 없다』에서 발췌)


            “사진은 탐험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여행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대신 보는 모험이다. … 

             니체는 여행자를 다섯 등급으로 나누었다. 가장 높은 등급은 (여행에서) 관찰한 것을 체험하고 체득한 뒤, 

             그것을 여러 행위와 일 속에서 드러내며 사는 사람이다. 

             동물 사진도 비슷하다. 젖소, 말, 돼지에서 깨달은 생각을 전시와 책으로 발표한다. 삶에서 실천하려 노력한다. ” (『사진, 울림 떨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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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말은 말이 없다>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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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말은 말이 없다>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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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말은 말이 없다>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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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원, <말은 말이 없다> 시리즈에서 

 

 

 

박찬원 작가가 반려동물이 아닌, 낯선 동물과 지낸 생활이 어느덧 8년이 넘었다. 동물과의 생활이 작가의 삶의 이력에서 1할을 차지했다면 이미 작가는 ‘동물화 된’ 것이다. “~되기”가 예술창작자의 태도 및 주제로 트랜드인 시절에 박찬원 작가는 진정 ‘동물사진가’가 돼 버렸다. 소, 돼지, 말 같은, 동물스런 사진가의 사진 작품을 보며 어떤 ‘진정성’을 사유한다. ‘동물 되기’란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입장이 되어 동물과 긴 시간을 함께 지내며 동물스런 행동을 하고 동물의 말을 나누는 일이다. 비인간의 행위에 주목하고, 사진 찍는 주체를 횡단해 “다른 것-되기(becoming-others)”. 내겐 이 지점이 굉장히 소중하고 아름답다. 작가가 하나의 주제(대상)를 촬영할 때 “100일 촬영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이유도 ‘다른 것이 되기’ 위한 임계점이 그곳(곶)에 있기 때문이리라. ‘100회’는 작업의 뇌관에 도달하기 위한 물리적인 감응의 횟수이자 꾸준히 천착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뜻한다. 작가의 ‘사진 하는 태도’는 디지털카메라 등장 이후 사진 촬영의 편리성이 최고에 이른 이즈음에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박찬원 작가가 매 출판과 전시에 들인 공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모든 기획은 작가의 아이디어로부터 나왔다. 먼저 작업의 주제를 깊게 사유하고 본격적인 촬영을 위한 채비(로케이션, 섭외, 장비 점검, 일정 체크 등)를 단단히 한다. 촬영을 진행하며 주제를 점점 강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미 다음 전시와 출판 계획이 세워진다. 이를 위해 본인의 작업 상황을 바깥에서 안으로 계속 검증하며 촬영한 사진들을 인화해 모의 출판과 가상의 전시를 꾸민다. 자기가 촬영한 사진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은 사진 작업에서 어쩌면 촬영만큼 중요한(어려운) 시간으로 무엇을 어떻게(왜) 찍고 있는지 방향을 점검하는 일이기도 하다. ‘소’를 촬영할 때는 곽암(廓庵)의 <십우도(十牛圖)>를 되뇌며 사진 촬영이 곧 수행이자 깨달음의 길(道)임을 보여준다. “소는 도(道)다. 도(道)를 터득하는 과정은 소를 찾아 길들이는 행위다. 사진도 도(道)다. 사진 작업은 소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행위자(actor)로서의 강한 의지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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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밤과 산, 길>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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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밤과 산, 길>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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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밤과 산, 길>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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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밤과 산, 길> 시리즈에서  

 

 

 

오는 8월에 열릴 박찬원 작가의 전시 타이틀 <밤과 산, 길>은 “내 안의 소우주(小宇宙), 생명의 이동, 영혼이 교감하는 밤, 산속의 울림, 우주를 움직이는 숨, 인간과 젖소의 공존, 탄생과 죽음” 등 젖소로부터 받은, 박찬원 작가의 독특한 시각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 작가의 사진 철학을 함축한 말이다. <밤과 산, 길>은 젖소의 초상사진으로 시작해 밤하늘의 은하수 같은 신비로운 실루엣과 특별히 아름다운 젖소의 모습이 전시된다. 동물들의 신호에 민감한 작가에게 ‘밤’은 동물과 교감하는 동물의 시간이고 ‘산’은 동물과의 대화가 깊게 울리며 이어지는 공간이다.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동물의 세계를 캄캄한 우주, 경이로운 세계로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길’은 십우도(十牛圖)의 길(도(道))이자, 작가의 사진 여정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밤과 산, 길>은 박찬원 작가의 동물에 대한 깊은 사유의 결정체이자 ‘소우주’로, 작가의 삶과 사진, 사유가 빛나는 전시이다. 기후 변화, 코로나19, 인류세(Anthropocene) 담론 등 지구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각성을 촉구할 때마다 등장하는 윤리강령이 난무하는 가운데 스스로 동물이 된 동물사진가 박찬원과 그의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이다. 작가에게 다음 동물은 ‘누구’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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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밤과 산, 길> 전시 포스터


 

글 : 최연하(EPA기획자,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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