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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07_EPA Artist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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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숲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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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07 EPA Inter-View / <이진경의 “진경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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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작가 

 

 

이진경 작가의 작품의 소재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비닐(vinyl)봉투이다. ‘봉다리’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는 비닐 봉투는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기에 가볍고 편리한데다 값이 싸고 구하기 쉬어 실생활에 요긴하게 쓰인다. 집에 온 비닐 봉투는 냉동고 속에서 정체 모를 음식과 함께 오래 머물거나 갖은 쓰레기를 담아 버려지는가 하면 쓰레기장에서 이탈하여 제 홀로 거리를 날아다니다 땅과 바다에서 처참한 몰골로 드러나기 일쑤다. 아주 가볍고 흔하고 값싼 비닐봉투의 최후는 무겁고 값비싼 대가를 인류에게 요구한다. 일회용이 아닌 영구적인 과제를 안기며 거대한 환경 문제로 부각된 비닐봉투. 이진경 작가가 <진경산수화> 속에 비닐을 켜켜이 퇴적해 만든 도래할 미래의 풍경이 실감 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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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RED, 120x120cm, Digital Pigment prin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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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YELLOW, 120x120cm, Digital Pigment print, 2017 


이진경 작가는 <Home, Sweet Home>(2017) 시리즈부터 최근작 <진경산수(盡景山水)>까지 일회용 비닐봉지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장을 볼 때마다 쏟아지는 비닐 포장재를 모아 촬영한 사진이 <Home, Sweet Home>이고 이후 검은 비닐봉지로 <Black> 시리즈를 완성한다. 작가는 농촌의 논과 밭에 버려진 비닐봉투가 쌓여 검은 물결을 이루는 것을 보며, 썩지 않는 비닐봉지에 갇혀 숨죽여 살아가야 하는 땅과 농작물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과잉 소비와 무분별한 일회용품 남용이 만들어낸 검은 소비의 풍경이 바로 <진경산수盡景山水)>를 이루게 된 것이다. 언뜻 보면 안개가 자욱한 신비롭고 평화로운 풍경 같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검은 비닐이 몸부림치며 불길한 상황을 무겁게 드러낸 작품이다.  


아래, 이진경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작업 세계를 살펴보았다. 

 

 ECO : 작가님의 초기 작업 <이주>와 <공작 도시>로부터 최근작 <진경산수>까지 작가님의 작업은 환경(생태) 의식으로 도저한 것 같습니다. 창작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모티브 혹은 작업의 동기가 궁금합니다. 

이진경 : 촬영을 위해 로케이션을 하다가 발견했는데요. 서울의 외곽이나 오래된 주택가의 담벼락에 대부분 화분이 놓여있잖아요. 그 화분들은 주로 ‘빨간 다라이’나 ‘페인트 통’, ‘버려진 플라스틱 화분’처럼 낡은 것이었어요. 그 속엔 고추, 가지, 파, 생강, 깻잎 등 식탁에 자주 오르는 야채류가 자라고 있었고요. 저는 ‘꽃과 화초를 심지 않고 왜 농작물을 심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산업화 과정에 서울로 이주한 농부들의 ‘향수’에서 찾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만난 할머니는 “그거 자라는 걸 보는 게 사는 낙”이라며 눈시울 붉히셨어요. 작은 그릇에 겨우 뿌리를 내려 보잘 것 없는 열매를 내놓는 그 농작물과 삶의 뿌리가 뽑혀 도시에 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작업의 관심은 주변에서 시작 됩니다. <공작도시>도 창밖으로 마을이 사라지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모습을 매일 촬영하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집에 이사할 때 부동산 중개인이 철거가 진행 중인 작은 동산을 가리키며 “저 동산에 있던 집이 철거를 반대하던 동네 주민이 자살한 집이라고” 알려줬을 때부터 뿌리가 뽑힌 시간에 다른 시간이 채워지는 과정을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주>와 <공작도시>는 도시화에 의해 사라지는 것과 남겨진 것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회와 환경에 대한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관심이 일회용 폐기물에 의해 파괴되는 환경에 대한 주제로 이어지며 <진경산수> 시리즈가 탄생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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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Portrait8, digital pigment print, 80x64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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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Portrait8, digital pigment print, 125x100cm, 2020

 

ECO : <Home sweet home>에서 <Black>과 <진경산수>로 작업이 진화하게 된 세부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진경 : <Home sweet home>은 매일 음식물을 사고 그 포장재를 재활용하기 위해 모으는 일이 일상인 주부라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어느 날 장을 좀 많이 봤는데 포장재를 벗기다가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장을 본 물건을 다 정리하고 보니 먹기 위해 산 물건과 포장재 부피가 비슷한 걸 발견하고 도대체 내가 이 비닐 포장재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기록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됐습니다. 사적 아카이브라고 생각하고 비닐을 날짜별로 모아서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걸 한 달 단위로 묶어서 일 년 동안 사용한 비닐을 기록했습니다. 처음 몇 달은 사진 이미지의 변화가 별로 없어서 삶이 참 단조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작업 중에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간병을 시작하면서 내 쓰레기 일기도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일 년 동안 징그럽게 많은 라면을 먹었더군요. 그 한 해 시간에 쫓기며 허둥지둥 살던 내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음식물을 사는 과정에서 모아둔 비닐 중에는 재래시장에서 반찬이나 고기 등을 살 때 담아온 검은 비닐봉지가 제일 많았습니다. 그건 다른 비닐봉지가 가진 상표와 유통기한 같은 것이 없는 익명의 물건이었기에 따로 모아 촬영을 했고, 그것을 모으고 겹쳐 나가는 과정에서 검은 봉지가 가진 다양한 서사와 상징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린 퇴근 길에 잘 갖춰 입은 정장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비닐 봉지에 아이들을 줄 과일과 스트레스 받는 날에 위로가 되는 소주 한 병, 고구마 같은 것을 잘도 들고 다니거든요. 천재적인 변신술과 용도를 가진 그 검은 비닐 봉다리는 숨기고 싶은 것들을 그 얇은 껍데기로 잘도 숨깁니다. 그 숨기기 천재인 검정 봉다리를 어느 때부터인가 대나무 숲 같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기 싫은 비밀을 담아 한쪽 구석에 숨기고 잊은 것처럼 상상하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그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나니 정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리즈가 <Black>이었습니다. 그렇게 변신술이 능한 검은 비닐 봉지가 성자가 되고, 유령이 되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경산수>의 주제인 환경문제도 인간의 발명품 중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는 플라스틱을 싸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사용하고 버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플라스틱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걸 남용한 인간이 문제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일회용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덮혀 가는 우리 산과 들, 바다를 검은 비닐봉지로 풍경화를 만들어 우리의 부분별한 과잉생산과 소비, 그리고 환경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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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공작도시 200517, Digital Pigment Print, 84x56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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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경, 공작도시 200924, Digital Pigment Print, 84x56cm, 2020     

 

ECO :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진경 :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리며 촬영하기에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Home sweet home> 작업을 하는 동안 아버지가 갑자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5개월 만에 돌아가시면서 시간을 기록하는 작업은 (그것을 누군가 발견하든 안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 작업이 사진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보다 더 사진다운 사진이 어디있냐고” 되묻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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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경, Mandala108, Digital Pigment Print, 80x80cm, 2019

 

 

ECO : 기후 위기 관련,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지요.

이진경 : 환경을 주제로 미적으로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대개 사람들은 가치가 없고 보기 싫다고 느끼는 검정 비닐봉지로 한 작업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미술 작품의 취향이 단조로운 나라에서는 더 어려운 일이죠. 처음 비닐봉지로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왜 작가가 환경 캠페인을 하냐, 작가는 환경 운동가가 아니다. 그런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기 싫은 소재로 작업하면 작업에 세련된 느낌도 없고 아무도 너의 작품을 사지 않을 거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늘 지금, 그리고 오늘에 발을 딛고 현재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오늘의 문제를 고민하고 작가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고발하지 않는다면 단지 벽을 장식하는 공예품을 만드는 그림쟁이나 사진쟁이 밖에 안될 것이고, 그럴거면 돈 잘 버는 디자이너를 계속하지 굳이 이 어려운 작가의 길을 나서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세상에서 한 발 떨어져서 관조하는 듯한 작업을 하는 작가보다 오늘을 얘기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작가가 더 많이 생기고, 그런 작업의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우리나라 미술계에도 보편화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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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경, 人往製色圖, 90x157cm, Digital Pigment Prin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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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경, 盡景山水 水03, 50x50cm, Digital Pigment Print, 2021

 

 

ECO :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진경 : <진경산수> 시리즈를 미디어아트로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2021년 <예술지구 P>에서 있었던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시도했고, 다음 단계를 준비 중입니다. 나를 소개할 때 사진가라고 소개하는데 사람들은 나를 사진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흔히 사진으로 시작한 작가들이 사진가의 정체성을 버리고 아티스트라고 불러 달라고 하는데 나는 계속 사진가라고 나를 소개할 겁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 제작 도구가 사진이니 사진가가 이 시대 최고의 예술가 아닐까요?     (인터뷰 정리 및 글 : EPA 최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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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경, 몽유도원 2021_예술지구p 설치전경


#이진경 #진경산수 #비닐봉투 #검정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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