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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H SUNTAG

<감전(Electric Torture)>의 배경은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한 초고압 송전탑이 설치될 밀양이다, <개나리>의 주인공인 ‘개’, <고장난 섬 Wrong Island>은 바로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에 있는 ‘농섬’을 말한다. <플라스틱 전원일기>는 작가가 농촌에 살게 되면서 목도한 플라스틱 풍경을 보여준다.

개인전

2018 핏 빛 파란 /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17 비상국가 II – 제4의 벽 / 아트선재센터, 서울

2016 시켜서 춘 춤 / 43 Inverness street, 런던 영국

2015 좋은, 살인 / 갤러리 수가타, 교토 일본

2013 어부바 / 류가헌 갤러리, 서울

2012 망각기계 / 학고재, 서울

2012 실성한 성실 / 동강사진박물관, 영월

2010 좋은, 살인 / 상상마당, 서울

2010 성실한 실성 / 고은미술관, 부산

2009 Estat d'excepció / La Virreina, 바르셀로나 스페인

2008 비상국가 / 뷔르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 슈투트가르트 독일

2007 붉은 틀 / 갤러리 로터스, 파주

2006 얄읏한 공 / 신한갤러리, 서울

2004 분단의 향기 / 김영섭화랑, 서울

이인전

2007 선무 + 노순택 ; 우리는 행복합니까 /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서울

2007 주명덕 + 노순택 ; 건희네 동네 / 대안공간 건희, 서울

2009 채승우 + 노순택 ; 춤추는 무뢰한 / 갤러리 129, 서울

2010 강홍구 + 노순택 ; 늙은 개와 구르는 돌 / 갤러리 킹, 서울

단체전

2020 시대를 보는 눈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0 낯선 전쟁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0 메이투데이 / 아트선재센터, 서울

2020 광장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베르겐어셈블리 – 죽어도 죽은 게 아닌 / 베르겐, 노르웨이

2018 문명 –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8 균열 II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6 내가 왜 / 궁핍현대미술광장, 서울

2015 Paradox of Place / Seattle Art Museum, 시애틀, 미국

2015 북한프로젝트 /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4 올해의 작가상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4 사진과 역사 /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14 밀양을 살다 / 류가헌, 서울

2013 에르메스 미술상 / 아틀리에 에르메스, 서울

2012 광주비엔날레 / 광주

2012 PUBLIC : Occupied Spaces / Museum of Contemporary Canadian Art, Toronto, Canada

2012 Demonstrations-Making Normative Orders / Frankfurter Kunstverein, Germany

2010 분단미술 - 눈 위에 핀 꽃 /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10 Re-Designing the East /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 Germany

2010 미디어시티서울 "Trust" / 서울시립미술관

2010 MISSING / Robert Goff Gallery, NewYork USA

2010 죄악의 시대 / 대안공간 루프, 서울

2009 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 - 악동들 지금, 여기 / 경기도미술관, 안산

2009 Alogon Affair / 학고재, 서울

2008 39조2항 / 아트선재센터, 서울

2008 한국현대사진 60년 1948-2008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8 Heartquake / Socio-Political Contemporary Art Museum, Jerusalem, Israel

2007 뻥화론 / 쌈지스페이스, 서울

2007 민중의 고동 - 한국 리얼리즘 미술 1945-2005 / 반다이지마 미술관, 일본

2007 전쟁표면 / 평화박물관, 서울

2007 Landschaft - Entfernung /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 Germany

2007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 / 제로원디자인센터, 서울

2006 친숙해서 낯선 풍경 / 아르코 미술관, 서울

2006 On Difference #2 + middle corea /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 Germany

2004 지속되는 순간들 / P.S.1 MoMA, 뉴욕, 미국

2004 리얼링 15년 / 사비나 미술관, 서울

_감 전
_개 나 리
_고장난 섬 Wrong Island
_코로 나오는 풍경
_플라스틱 전원일기
감 전

Electric Torture
이른바 ‘국책사업’이었다. 우리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국가의 이름으로 집행하는 거라 했다.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한 일에 소수의 희생과 양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경남 울주군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한 초고압송전탑 건설계획은 2002년부터 시작됐으나, 송전선로 통과지역 주민이 당신들의 머리 위로 고압선이 지날 거라는 사실을 안 건 2005년이었다. 사업주관사인 한국전력은 주민협의과정을 거쳤다 주장하지만 설명회에 초대된 이들은 해당지역민의 0.6%에 불과했다.
밀양의 늙은 농부들은 분개했다. 2007년 산업자원부가 사업을 승인하고 2011년 송전탑 건설이 강행되자 주민들은 본격적인 저항운동에 들어갔다. 한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2년 1월 16일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 이치우(74) 농민의 논에 50여 명의 용역직원과 굴착기가 들이닥쳐 100m 높이의 송전탑을 세우기 시작했다. 울분을 참지 못한 늙은 농부는 몸에 불을 붙여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덮기 급급했다. ‘자기과실에 의한 화재사망 사건’이라던 발표를 ‘분신사망’으로 정정하는데 보름이 걸렸다. 칠순 팔순의 노인들이 산중턱과 꼭대기의 송전탑 예정부지에 천막을 치고 목에 올가미를 걸고 발버둥을 쳤지만 힘센 용역과 경찰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나이든 주민들의 팔이 꺾기고 자루에 담겨 패대기쳐지는 수모의 현장에서 경찰은 구경꾼이었다. 뿐인가, 산속에 고립된 주민들을 살피러 가던 의료진을 막아 세웠다. 한전은 찬성 주민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살갑던 마을공동체를 이간질했다. 2013년 12월 2일 상동면 고정마을 유한숙(74) 농민이 음독 자결했다. 2014년 6월엔 주민들의 저항천막을 철거하는 대규모 행정대집행이 강행됐다. 밀양에만 69기에 이르는 초고압송전탑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을과 논밭을 가로지르며 척척 들어섰다. 마침내 2014년 12월 28일, 한전은 시험 송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일까. 그것은 농민들의 상처를 헤집으며 흐르는 전기였다. 2019년 7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밀양송전탑 강행 과정에서 국가에 의한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자행됐음을 인정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공식 사과했다. 시간이 흐르고, 사과도 받았다지만, 주민공동체에 남겨진 고통과 갈등의 얼룩은 여전히 짙다. 밀양은 묻는다.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 앞에서, 떳떳한 이 누구인가.
개 나 리

개 같은 세상이로다! 여기서 ‘개’는 ‘엿’과 같은 의미다.
엿 같은 세상이로다! 개는 다정하고 엿은 달콤한데, 어쩌다가 개 같은 세상과 엿 같은 세상은 ‘몹쓸 세상’과 같은 뜻이 되었을까.
개는 인간이 돌을 쪼개 원시적인 도구를 겨우 만들던 구석기시대부터 사람 곁에 머문 최초의 가축이었다. 3만 년 전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벨기에의 동굴에서 개 머리뼈가 발견된 것을 비롯해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사람과 개의 친숙하고
오래된 역사를 말해준다. 개의 조상인 회색늑대가 어쩌다 사람의 충직한 동반자가 되었는지 추적하는 연구들은 흥미롭다. 서로는,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서로는, 서로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둘은, 영리하다.
개는 비교 불가능한 도구였다. 사냥이 곧 생존이던 원시수렵사회에서 어지간한 돌도끼보다 나은 연장이었다. 농경사회에선 야생동물과 침입자로부터 집과 곡식과 가축을 지켰다. 오늘날의 개는 마약과 폭탄을 탐지하고, 테러범을 진압하기도 한다. 아울러 ‘여전히’ 음식이다. 심지어 가족이다.
21세기 인간의 환경이 지역/정치/경제/인종/성별에 따라 너무 다르듯, 개를 둘러싼 환경 또한 극단적으로 다르다. 어떤 개는 여전히 고기지만, 어떤 개는 상팔자를 누리며 ‘나으리’처럼 대접받는다. “사람팔자 보다 나은 개팔자”라는 한탄은 어딘가 틀리지만 어딘가 맞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를 어찌 대하든, 개는 인간에게 환경이 되었다. 이미 개에게 인간이 환경이듯.
고장난 섬 Wrong Island

헐벗은 섬이었다.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쉼 없이 이어진 폭격과 기총사격 탓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를 그랬으니 남아날 게 없는 건 당연했다.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농섬. ‘농’이라는 이름이, 잘못됐다는 뜻의 영어단어 ‘wrong’을 연상시킨다. 오산공군기지에서 낮게 날아오른 미7공군 소속 전투기들은 매향리 육상사격장의 목표물에 기총사격을 한 뒤 바다를 건너 농섬에 폭탄을 투하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식의 훈련을 이어왔다. 인근에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실전과 같은 입체적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멀리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전투기들도 이곳을 즐겨 찾았다.
주민들은 불안과 우울, 신경쇄약에 시달렸다. 가축들은 유산하기 일쑤였다. 미7공군 관할이지만, 운영과 관리는 세계적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이 맡아 왔다. 수십 년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무기들이 실험되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2000년 5월, 잘못된 포탄 투하로 인해 마을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가옥이 파손되는 사고가 났다. 주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폭격장 폐쇄운동에 돌입했다. 많은 이들이 다치고 연행되고 구속됐다. 끈질긴 저항운동 끝에 2005년 8월, 매향리 폭격장은 폐쇄됐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주한미군은 한국정부에 훈련소요량을 채우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 달라 겁박했다. 폐쇄가 아니라 이전이었다. 한국정부는 군산 앞바다 ‘직도’를 내줬다. 그곳은 우리가 차마 다가가기 힘든 섬, 농섬처럼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려운 먼 섬이기에, 보는 눈이 많은 이 시대에 더 적합했을 것이다. 고장난 섬 농섬엔 이제 폭음이 울리지 않는다. 물론 또 다른 ‘롱 아일랜드’는 온몸으로 폭격을 견디며 이 시간에도 고장나고 있다.
코로 나오는 풍경

1.
역사책에서나 읽었던 일들을 겪고 있다. 상상해본 적은 있으되 내 앞의 현실이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이 이 녀석을 ‘21세기 흑사병’이라 부르는 건 딱 맞지는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혹자는 이 녀석을 신종감옥이라 불렀다. ‘지은 죄’ 없이도 우리는 삽시간에 죄수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땅히 치러야 할 죗값을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구별의 입장에서 인간은 가장 악독한 신종 바이러스요, 코로나는 지구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자가면역체계일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코로나는 인간에게 무거운 거울을 내민다.
2.
적응의 동물이야말로 사람이라던가. 비접촉, 비대면, 집합금지, 거리두기. 낯설었던 지침들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왁짜지껄했던 몇 년 전이 이젠 낯설 지경이다. 흘러간 드라마를 보다가 잠깐 놀랐다. ‘아, 저땐 사람들이 저리도 아무렇지 않게 모였구나. 잔치가 열리고, 손을 부여잡고, 얼굴을 부비고....’ 어째서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그리움이 아니라 낯섦을 느꼈을까. 코로나 시대를 겨우 2년째 살면서 20년째 사는 사람처럼 생각하다니 사람이란 얼마나 똑똑하며 멍청한가.
3.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나이든 이들에게 치명율이 높다는 핑계는 무척 편하다. 기숙사로 올려보냈던 큰아이는 엄마아빠 사는 시골집에 내려와 집돌이가 됐다. 언제 이런 오붓한 시간을 또 누릴까 싶은 뿌듯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 큰 성인들이 하루 종일 집에 머무는 생활은 간단하지 않다. 꼬박 1년을 서로 견디다가 그 녀석은 다시 올라갔다. 대면수업을 하든 안하든 그 아이가 머물러야 할 곳은 집이 아니었다.
4.
누군가들은 죽을 맛이다. 소상공인들, 준비 없이 해고당한 노동자들. 누군가들은 희색이 만연하다. 온라인 기업들은 사상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람대신 오가는 물건의 양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허나 그 물건도 사람이 나른다. 코로나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이 감염병에 걸린 탓일까. 자본의 논리는 ‘코로나 방패’를 얻어 더 강해졌다.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는 세상물정 모르는 생떼로 치부됐다. 2021년 2월 5일, 나는 국회의장실에 있었다.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46일째 단식투쟁을 이어가던 친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농성을 시작한 탓이었다. 행여 친구가 어찌 될까봐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경찰이 들이닥쳤다. 우리는 사지가 들린 채 국회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마스크는 어디론가 벗겨져나갔다. 단식하던 친구를 찾으려 다시 들어가려 하자 진압경찰이 막아섰다. 화가 치밀어 항의하는 내게 경찰이 뭐라 말했을까. “마스크부터 쓰세요!” 당신들이 벗긴 거라고 외치자 뭐라 답했을까. “일단 마스크부터 쓰세요!”였다. 단식하던 그 친구가 위험할지 모른다고 호소하자 무슨 대답이 돌아왔을까. “알았으니까, 일단 마스크부터 쓰세요!” 울분이 일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게 옳은 대답이었을까. 그의 말이 지금도 뇌리에 맴돈다. 너가 무슨 말을 하든, 마스크부터 쓰라니.
그립다는 마음보다 낯설다는 마음이 앞섰다.
좋아했던 것들과 자연스럽게 하지만 강제로 멀어졌다.
영화속에서 사람들이 좋은 점도 있었다.
수영, 목욕탕, 노을이. 부모님, 노동자친구들, 쿠팡맨. 국회농성
플라스틱 전원일기

도시인에게 농촌은 마치 ‘자연’의 다른 이름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고향의 다른 이름이며, 삭막하기 그지없는 도시생활의 대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 머릿속에 농촌은 사람이 살만한 곳, 오염되지 않은 자연으로 풍요로운 낙원으로 낙인찍혀 있다. 1980년에 시작해 22년 동안 무려 1088회분을 방영하며 사랑받았던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엔 우리가 그려온 농촌의 살가운 풍경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런데 왜 다들 떠날까. 왜 농촌에 사람이 없을까.
인구소멸과 관련한 각종 연구들은 소멸위기 지역의 절대다수가 농촌임을 지목하고 있다. 우리시대에 농촌은 사람 살 만한 곳이 아님을 우리의 삶이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의 삶을 플라스틱에 빗대는 건 익숙한 수사다. 허나 플라스틱의 편리함은 도시인만 추구하지 않는다. 사람이 떠나는 곳, 늙은 노동력이 절대다수인 곳에서 플라스틱의 편리함은 더욱 빛난다.
농촌에 살면서 내가 본 농사일은 온통 플라스틱에 빚지고 있었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보관에서 판매까지. 농촌에서 플라스틱은 부족한 사람 몫을 과하게 해내고 있다. 바람 부는 들녘에는 볕에 바래고 흙을 묻혀 번들거림을 감춘 플라스틱이 사방에서 출몰한다.
뿐이랴, 고향방문/성묘/피크닉/낚시 따위 목적으로 잠시 농촌을 찾은 이들마저 가벼운 마음으로 플라스틱을 주고 간다. 어차피 보는 눈도 없으니까, 그 농촌은 모든 걸 품어주니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착각 속에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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