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고향으로, “800번의 귀향”
호기심에 끌려 바닷속으로 처음 들어가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입수하는 순간의 두려움과 공포는 바다생물을 만나며 곧 놀라움과 환희로 바뀌었다. "지구라는 행성의 진짜 모습이 이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벼락처럼 머리를 쳤다. 태어난 행성의 실체도 모른 채 생을 마감했다면 헛삶을 산 것일 수 있겠다 싶었다. 바로 자격증을 따고 늦바람처럼 다이빙에 빠져들어 기회만 있으면 바다로 갔고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800번의 다이빙을 통해 바다에서 만난 수많은 생명체는 결코 하등생물이 아니었고, 각각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존재였다. 모든 생물은 그의 생명과 삶을 유지하기 위한 관점에서 보면 진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존재다. 바다생물 입장에서는 오히려 인간이 특수 장비 없이는 5분도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하등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의 근원은 바다에서 시작됐으니 바다생물들이야말로 ‘생명의 고향’을 지킨 아이들이고, 인간과 같은 육지 생물은 '집 나간 아이들'일 것이다. 더구나 집을 나간 이후에도 수많은 혜택을 받으면서도, 모든 배설물을 돌려보내며 고향의 안녕을 위협하는 배은망덕한 존재일 수 있다. 평생 ‘환경운동’이 늘 바로 옆에 있었지만, 기껏 식용으로 사용하는 생선 몇 종류 이외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르면서 외치는 “바다를 지켜야 한다"라는 말은 허공의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바다생물이 누구인지,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지 그들의 존재와 모습을 알리고 싶었다. ‘다이빙 기록을 위한 수중사진’이 ‘수중사진을 위한 다이빙’으로 전환되는 동기가 됐다.
수중사진은 자연광이 극히 적어 스트로보에 크게 의존해야 하며 카메라 조작도 쉽지 않다. 피사체는 물론 사진가 스스로의 위치나 안정감조차 확보하기 매우 어렵다.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매우 제한적이다. 크고 무거운 장비로 인한 체력 소모와 험한 파도와 조류로 인한 위험성도 적지 않다. 피사체가 되는 바다생물의 크기는 1밀리미터에서 십수 미터까지 엄청난 범위여서 각각 접사렌즈와 광각렌즈가 필요한데, 수중에서 렌즈 교환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번 다이빙에서 어느 한쪽은 포기해야만 한다. 그나마 피사체로의 접근이 어느 정도 가능한 접사촬영의 경우와 달리 덩치가 큰, 그것도 만나기 매우 힘든 바다생물이 나타난 짧은 순간을 담는 광각 촬영의 경우는 완벽한 구도의 사진을 얻는 것은 용왕님이 허락한 것이라고 할 정도의 행운이 따라야 한다. 먼 나라까지 힘들게 가서 수십 번 다이빙을 하며 기다려도 원하는 바다생물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다. 이번에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다시 가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바닷속 지형을 살피고, 주변 다이버들 위치를 확인하고, 바다생물의 특성을 생각하며 그들의 동선을 예상하고, 최선의 위치를 잡고, 그곳에 적합한 카메라 세팅을 하고 기다리는 것이 수중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10년 이상 긴 세월동안 세계 곳곳에서 800번을 내려가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바다생물은 어지간히 만나본 듯하다.
영화 그랑블루에서 주인공 자크는 바닷밑에서 다시 올라갈 이유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다 결국 바다로 돌아갔고, 또 다른 주인공 엔조 역시 죽음의 순간 바다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다이빙을 하다 보면 어디가 진짜 우리의 고향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800번의 귀향’ 사진전을 통해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물은 아름답고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공유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