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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ONGMOON

이동문은 2010년에 낙동강 하구에서 벌어진 ‘4대강 공사 현장’을 기록하고, 그곳에서 누대로 터전을 일구며 산 사람들의 초상을 촬영했다. 농사지은 당근을 곧 수확할 수 있는데 이 땅을 떠나야 하는 삼락(三樂)의 농민들의 사연과 도도하고 아름답게 흘렀던 낙동강이 강바닥을 드러내며 처참한 몰골로 바뀌는 모습이 처절하기만 하다.

학력

1993 서울시립대학교 환경 조각학과 졸업

개인전

2016 <삼락의깃발>, 킴스아트필드

2011 <강은우리에게>, 오픈스페이스배

단체전

2019 핵몽3 전, 복합문화공간 에무

2019 미얀마 한국 국제교류전 “The Instinction Let it Be”, Inley, Yangon

2018 핵몽전II, 부산 민주공원 전시장

2018 핵몽전II, 광주 은암미술관

2015 <망각에저항하기>, 경기안산 예술의 전당

2013 수원 화성국제 사진축제

2013 <키워드부산미술전>, 미부아트센터

2012 <도시유목ㅡ아시아의이동>, 관뚜미술관, Taipei

2011 중국 핑야오 국제포토페스티벌, 우수상

2011 <강은우리에게> 개인전, 오픈스페이스배

2011 4대강 시리즈프로젝트중<목격자>, 오픈스페이스배

2011 <Busan in Taipei 전>,TCAC ,대만

2011 <미술은현실이다> 대전Space SSEE

2011 <폐허프로젝트전>,경남도립미술관

_강은 우리에게(The river to us)
_삼락(三樂)의 깃발
강은 우리에게(The river to us)

2010년 1월 이른 아침 낙동강 합천 근교, 잘린 강허리에서 가물막이용 철벽을 강바닥에 박기 위해 천공기 공사를 하고 있는 4대강 현장에서는 수면에 얼어붙은 살얼음이 떨릴 만큼 날카로운 굉음이 울려댄다. 사진 작업을 위해 몇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얼핏 분단된 우리 땅 한반도 모양을 한 강기슭을 발견하고 재빠르게 카메라 장비를 설치했다. 촬영하는 내내 내 귀로 굉음 소리와 살얼음이 진동하는 소리가 마치 허리가 잘려 살려달라는 듯한 이 땅의 비명 소리처럼 들렸다.
멀쩡한 생명이 숨 쉬고 살아있는 강을 다시 살린다는 기가 막힌 명분으로 전례 없이 강을 파괴하고 강 허리가 끊긴 채 우뚝 솟은 저 거대한 철의 장벽들을 바라보면, 이념으로 분단된 이 나라가 연상되고, 광화문 앞을 막아 놓은 거대한 컨테이너 장벽, 이른바 ‘MB산성’이 연상된다. 국민과의 소통 없이 아니 소통을 필요치 않은 막무가내 밀어붙이기식의 거대 토목공사. 그들이 제시한 이유 중 어떠한 것도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채 그들의 말 그대로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으로 2년 안에 끝내버린 거대한 환경파괴 사업. 소통을 원하는 국민의 수많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들의 논리로만 강행하여 만든 거대한 철의 장벽!
이제 그것은 국민과의 불통을 암시하는 그들만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삼락(三樂)의 깃발

부산 삼락둔치 친환경농지 82만m2, 191가구의 농민들.
정부의 4대강 토목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삼락둔치는 곧 낙동강에서 채취된 준설토 임시 적치장이 될 계획이다. 대대로 지켜왔던 경작지의 절반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2005년 부산시로부터 당대에 한해 이곳 농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던 시장과의 약속이 여전히 지켜지길 믿고 있으나, 평당 12,500원의 보상조건으로 이곳에서 영구히 내몰리게 되었다. 그저 땅만 알고, 땅만 파며 별 욕심없이 살아왔던 그들, 시로부터 강제 행정 대집행일을 목전에 두고, 더 이상 디뎌볼 수 없을 정든 땅 위에 서서 오늘도 불안한 마음으로 삽자루를 든다.
이제 그들 가슴속엔 "생존" 이라는 깃발이 하나씩 서있다.
"당근 수확하려면 11월 중순은 되어야 하는데..."2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송정기(49)씨. 지금은 3,500평의 당근농사를 짓고 있다. 5년 전 부산시로부터 땅의 절반을 내줄 것을 약속하면 현재의 농지를 계속 경작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부산시는 큰 돈을 들여 이곳의 농지 개량 사업을 하기도 했다. 송씨는 농지에 들어온 돌, 폐기물 등의 오염물을 오랜 시간동안 걷어내면서 땅을 가꿔왔다. 오랜 노력으로 지금은 송씨의 땅은 비옥한 토지가 됐지만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제는 농사를 더 지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삼락둔치가 낙동강 바닥을 긁어 퍼낸 모래를 쌓아놓는 임시 적치장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농사 지을만하니 나가란다"며 긴 한숨을 내쉬는 그는 "이제껏 심어둔 당근이 수확되려면 11월 중순은 되어야 하는데, 10월 중으로 정리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만 탈 뿐"이라며 근심 어린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땅만 알고, 땅만 파며 욕심없이 살아온 농민들삼락둔치에서 스무살 무렵부터 농사를 지어왔다는 장명렬(60)씨는 부인과 딸 셋을 둔 가장이다. 젊었을 때 농기구에 의해 세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유달리 농토에 애착을 가져왔다. 오랫동안 스스로 터득한 자신만의 여러 방법으로 좋은 농토 만드는 법을 알아내고 토질을 개선해 왔다. 그에게 자식처럼 어루만져 온 땅을 두고 떠나야 하는 마음은 그래서 무겁기만 하다.안타까운 마음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성장까지 만들어 반대를 해봤지만 역부족이다. 최근에는 간경화 등으로 몸까지 많이 쇠약해져 일도 싸움도 쉽지 않다. 떨어져 사는 자식들에게는 "걱정말라"는 말을 늘 잊지 않지만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노년의 농민들이 깃발을 달고, 촛불을 켜고, 농성장을 꾸려 당번까지 짜가며 정부 사업에 반대를 하는 풍경을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표정에서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낯선 일에 대한 어색함이 역력하다. 이 이상한 풍경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안타까운 싸움의 뒤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더이상 디뎌볼 수 없을 정든 땅 위에 서서 오늘도 삼락둔치의 농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삽자루를 들고 일터로 나간다. 이제 그들 가슴 속엔 "생존" 이라는 깃발이 하나씩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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