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에코포토아카이브

PARK TAEHEE

도시는 유기체처럼 늙고 병들어 언젠가는 사라진다. 도시가 낡고 남루해질 즈음 나타나는 징후들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쇠락의 시공이야말로 변화와 도약의 시기이기 때문이고 땅속에 잠들어 있는 옛 도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캐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박태희는 도시의 후미진 골목과 스러져 가는 담장과 위태로운 건물들 사이를 오가며 인간과 도시를 쓸쓸히 바라본다.

1998년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전공으로 대학원 석사과정(MFA)을 마치고 사진 책을 만들고자 안목 출판사를 설립했다. 직접 편집자와 제작자로 참여한 10권의 사진 관련 서적 외에 대학원에서 사진을 사사한 필립 퍼키스의 저서와 사진집을 지속해서 번역 출판하고 있다. 2007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 프로젝트와 환경재단 <세상을 밝게 빛낸 88인> 포트레이트 작업에 참여했다. 2011년, 17년간의 사진들을 엮은 <사막의꽃>을 출간했고 2012년, 14권의 사진 책에 대한 해설서인 <사진과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우수저작물>에 선정되었다. 건국대학교, 수원대학교, 상상마당, 안목워크숍을 비롯 지난 10여 년간 사진강의와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_도시와 인간
도시와 인간

나는 길거리에 나뒹구는, 비닐봉지, 혹은 어딘가에 쓰인 채 바람을 비를 뙤약볕을 견디는 장막의 미세한 주름 따위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셔터를 누르는데, 그 순간, 한없이 연약한 어떤 인간성을 응시하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터질 듯이 채워진 봉투가 길가 어딘가에 쌓여있는 것을 보면, 마치 평생 꾸역꾸역 모은 온갖 욕망의 찌꺼기를 짊어진 채 폐기된 우리 자신을 연상하게 된다.
낡은 것, 오래된 것, 곧 사라져 갈 모든 것들, 장소나 사람이나 만물에 똑같이 적용될 그 운명 앞에서 오늘의 삶을 이어가는 모든 존재가 애처롭긴 마찬가지다. 선정적인 간판을 내건 부동산, 로또를 사러 걸어가는 노인, 높이 쌓아 올린 짐으로 위태로운 배송 오토바이, 그들의 등은 외롭고, 시선은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다.
내게 사진이란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매체이기에 쇠락의 과정이 더 예민하게 감지되는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기념비로 남아 수백 년을 지켜낸들, 삶이 영원하겠는가. 인간도, 동물도, 돌멩이도 우리는 모두 사라지는 중이다. 언젠가 새것이 들어서겠지만 낡은 자리에 여전히 살아있는 아름다움을 남기고자 거칠고 순박한 삶의 모습들을 거침없이 마주할 수 있는 재래시장을 즐겨 걷는다.
장이 끝날 즈음 가판대엔 장막이 드리워진다. 열린 상점을 기웃거리며, 스산한 시장을 걸을 때, 저무는 해가 뿌린 빛으로 거리는 찬란하다.
SELECTED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