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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CHANWON

박찬원은 동물의 ‘생로병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사진가가 주문하면 포즈(pose)를 취해주지만 ‘하루살이, 돼지, 말, 소…’는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사진은 더욱 모르기에 당연히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박찬원은 이들을 촬영하기 위해 100번 이상을 다가간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대화하고 그들의 몸짓과 소리에 귀 기울여 겨우 탄생한 작품이다.

학력

2015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 대학원 사진영상학과 졸업 (조형예술학 석사)

1971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개인전

2021 소우주, 금보성 아트센터, 서울

2020 사랑한다 루비아나,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구

2020 사랑한다 루비아나, 사진위주 류가헌, 서울

2019 돼지가 우리를 본다, 금보성 아트센터, 서울

2019 돼지 꿈을 드립니다, 돼지 문화원, 원주

2018 말은 말이 없다, 금보성 아트센터, 서울

2017 어떤 여행, 사진공간 배다리, 인천

2016 돼지야 놀자, 돼지문화원, 원주

2016 숨 젖 잠, 사진위주 류가헌, 서울

2016 꿀 젖 잠, 대안예술공간 이포, 서울

2014 소금밭, 인덱스, 서울

그룹전

2016 특이한 부드러움 상냥한 떨림, 서울 혁신 파크, 서울

2013 Face to Face, 갤러리 룩스, 서울

2013 사진, 보여짐, Mirror 갤러리, 북경, 중국

2012 실크로드 사진전, 봄 갤러리, 서울

2011 Wisdom of Mother Earth, Seoul Photo 2011, 코엑스, 서울

2009 시선, 봄 갤러리, 서울

2008 시선, 반얀트리, 서울

출판

2020 사랑한다 루비아나, 사진위주 류가헌, 서울

2018 말은 말이 없다, 고려원북스, 서울

2017 어떤 여행, 고려원북스, 서울

2016 꿀 젖 잠, 고려원북스, 서울

2016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고려원북스, 서울

2009 당신이 만들면 다릅니다, 김영사, 서울

_소(牛)우주(宇宙)
_루비아나
_경주마
_시정마
_돼지
_소금밭
소(牛)우주(宇宙)

생명은 우주다.
소는 말보다 먼저 인간과 중요한 관계를 맺은 동물이다. 소 떼를 보호하기 위해 개를 가축화 했다. 사람이 소를 길들였다면 소도 사람을 길들였다. 인간은 원래 유당을 소화할 수 없었다.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비타민 D를 흡수할 수 있게 되어 뼈와 치아가 튼튼해졌다. 그 결과 음식물을 잘 소화하여 건강하고 오래 살게 되었다.
소에서 탄생을 생각한다. 탄생이란 다른 세상으로부터 온 생명체가 지구란 우주와 만나는 것이다. 젖소의 엉덩이에 동그란 풍선 방울이 생긴다. 그 속에 새끼가 들어 있다. 다리와 머리가 희미하게 보인다. 어미가 진통을 하면 풍선이 조금씩 커진다. 풍선이 터지면 생명의 탄생이다. 풍선을 자세히 보니 가느다란 실핏줄이 세계 지도처럼 얽혀 있다. 지구본 같다. 소우주(小宇宙)다.
젖소의 등은 깊은 산맥이다. 높은 산이 겹겹이 펼쳐있고 눈이 쌓여 있다. 산과 같이 젖소는 무엇이나 포용한다. 새끼를 데려가도 젖을 매일매일 빼앗아가도 화내지 않는다. 묵묵히 먹이를 되씹고 또 되씹는다. 새끼를 키우나 사람을 키우나 생명은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생후 2주된 새끼가 나를 본다. 어둠 속에 눈만 반짝인다. 젖소가 나에게 말을 건다. ‘너는 누구냐? 친구냐? 엄마냐? 신이냐? 악마냐? 아니면 젖소의 새끼냐?’
루비아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루비아나는 서러브렛(Thoroughred) 품종의 백색 경주마다. 1999년 2월 미국 렉싱턴에서 태어났고, 2007년 한국으로 입양되어 여덟 마리 새끼를 낳았다. 2017년 4월 제주도 대성목장에서 죽었다. 미국에서 두 살 때 경마에 출전하여 5년간 선수로 뛰었다. 열일곱 번의 대회에서 세 번 우승, 세 번 준우승, 세 번 3위 입상의 실적을 올렸다.
새끼 낳는 역할을 끝내고 다음 세상을 기다리고 있는 루비아나와 마지막 7개월을 함께 했다.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신이 되어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루비아나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생명이란 영혼과 육체가 함께 있는 것이다. 늙어갈수록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육체와 영혼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진다. 육체가 물체라면 영혼은 빛이다. 빛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강한 힘을 갖는다. 물체를 눈에 보이게 해주고 물체의 생명을 느끼게 해준다.
영혼 사진 작업은 깜깜한 밤에 한다.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루비아나에게 빛을 준다. 조리개를 최대한 연다. 시간을 길게 준다. 초점은 중요하지 않다. 육체는 사라지고 빛만 남는다. 보이는데 알 수 없다. 없는데 있는 것 같다. 영혼이다.
경주마

말은 말이 없다
말은 인간의 무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동반자였다. 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지 말은 인간과 인간, 지역과 지역을 연결시켜 주었다. 영토를 넓히고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끝없는 탐욕을 충족하는데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지금도 경마를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다.
말은 인간과 대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람은 미각과 촉각이 발달한 반면 말은 청각, 시각, 후각이 발달 되었다. 말은 큰 소리로 짖을 줄 모르고 겁을 주지도 못한다. 초식 동물이라 이빨도 약하다. 소화 기능도 약해 부드러운 풀만 먹는다. 그 대신 멀리서 나는 소리를 듣고 눈으로 확인한 후 행동에 옮긴다.
사람은 입이 발달 되었다. 말이 총알이다. 과거에는 총칼로 사람을 죽였으나 지금은 말로 상처를 입힌다. 입은 지구를 멸망시키는 포식자다. 맛있다 건강에 좋다 소문이 나면 동물이든 식물이든 멸종이 된다. 귀는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가까이 보는 말은 평소 생각과 다르다. 말은 역동적이지 않다. 목적이 분명할 때만 뛴다. 평상시는 풀을 뜯거나 명상에 잠겨 있다. 말은 여성이다. 섬세하고 예민하고 부드럽다. 말은 신사다 군집 동물이지만 패싸움을 하지 않는다. 먹이를 두고 다투지 않는다.
말에서 인간을 생각한다.
시정마

말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경주마 생산을 위한 목장이라 송아지를 빼면 암말만 산다. 유일한 수말이 시정마(Teaser Horse)라 불리는 제주 토종말이다. 경주마에 비해 몸집이 작지만 힘은 좋다. 이 목장에서 가장 활기차고 씩씩하다. 그렇지만 항상 욕구불만으로 갈증이 몸을 휘감고 있다. 자주 목을 비틀며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른다.
시정마의 역할은 두 가지다. 첫째는 암말이 발정기가 왔는지 테스트한다. 발정기가 오면 멀리서도 시정마가 냄새를 맡고 몸부림친다. “히이잉~ 으흐윽~” 신호를 주고받는다. 풀어 놓으면 쏜살같이 암말에게 달려간다.
또 하나의 역할은 암말에 대한 섹스 훈련이다. 특히 임신 경험이 없는 처녀 말은 섹스 훈련이 중요하다. 종마가 뒤에서 덮치면 놀라서 발길질을 한다. 비싼 종마가 다칠 수도 있다. 그래서 교배소에 가기 전에 미리 시정마와 훈련을 한다. 경주마와 제주 토종 말 시정마는 키가 맞지 않아 실제로 섹스는 할 수 없다. 시정마는 씩씩대며 항상 헛물만 켠다. 이런 경험을 한 경주마는 진짜 교배를 할 때도 놀라지 않는다.
말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인간이 별짓을 다 한다.
돼지

돼지가 나를 본다
돼지는 살아 있는 동안은 역할이 없다. 젖이나 털을 주는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도 아니다. 죽어서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 태어나고 사는 이유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은 물론 섹스 한 번 못해보고 죽는다. 어떻게 이런 삶이 있나? 돼지를 생각하면 애잔하고 슬프다.
그런데도 돼지는 인간 식량에 가장 적합한 생명체다. 우선 다산이다. 한 번에 10~15 마리 새끼를 낳고 일 년에 2.5회 임신을 한다. 성장 속도도 빠
르다. 자연 수명은 12년인데 6개월이면 다 자라 도축장으로 간다. DNA 조차 인체와 유사하여 인공 판막도 돼지 장기를 이용하고, 돼지에게 인체 장기를 이식하여 키우는 실험도 하고 있다한다. 돼지 덕분에 인간이 풍부한 영양을 흡수하고 잘 살고 있다.
지금 생애만 보면 돼지는 불쌍한 동물이다. 그러나 내세와 연결시켜 보면 의미가 달라진다. 돼지는 예수님이나 테레사 수녀님 같은 성인(聖人)이다. 인간을 위해 자기 몸을 주고 간다. 내세에 가면 인간과 돼지, 누가 더 존중 받을까?
‘꿀꿀꿀~ 끌끌끌~’ 돼지가 말한다. ‘꿀꿀꿀~“은 돼지가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고, ”끌끌끌~’은 돼지가 인간을 보고 혀 차는 소리다. ‘세상을 길게 보고 바르게 살아라.’ 돼지가 말한다.
소금밭

거미의 눈
염전에서 나비 사진을 찍고 있는데 거미 한 마리가 소금물에 빠졌다. 좁쌀 알만한 작은 거미다. 거미는 물에서 빠져나오려고 가는 다리를 휘저으며 허우적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염전 물은 여기저기 요동치고 거미는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소금 끼 가득한 염전은 죽음의 바다다.
죽을힘을 다해 버둥대던 끝에 겨우 판자 모서리에 다리를 걸쳤다. 미끄러지면서 판자로 만든 벽을 기어오른다. 사진 찍을 찬스다.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거미 가까이 댔다. 10cm 거리다.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난 거미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른다. 거미의 다리, 몸에는 굵은 소금 알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기사회생의 사진이다.
그 순간 거미의 눈과 마주쳤다. 바다에서 간신히 살아난 흥분에 정신없이 기어오르던 거미가 시꺼먼 유리 장벽을 보았다. 이건 뭐지? 절망이다. 무언가 애원하고 있다. 더 이상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얼른 카메라 치웠다. 거미는 판자 너머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보이지 않는 손이 거미를 살려 주었다.
염전에 빠져 있는 하루살이를 역광으로 찍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하루살이가 날아가고 있다. 하루살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이 땅으로 여행 왔다 하루만 머물고 다른 별로 떠나는 것이다. 거미, 하루살이, 나비에서 생명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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