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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포토아카이브
Jae-Yeon Jang | 장 재 연
Jae-Yeon Jang | 장 재 연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재단법인 숲과나눔’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94년부터 2020년까지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5년 온산병 대책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환경운동에 참여해 (사)시민환경연구소 소장, 서울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장과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사)환경보건포럼, 기후변화건강포럼, (사)수돗물시민회의, (사)기후변화행동연구소, (사)수돗물시민네트워크 등 을 창립해 공동대표 또는 이사장 역할을 수행했으며, 정부의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서울특별시 정책자문단 등에도 참여했다. 스쿠버다 이빙을 통해 만난 수많은 바다생물로부터 얻은 감동과 영감을 기억하고 전달하기 위해 수중 촬영을 시작해 10여 년 동안 바다생물의 다채로운 모 습을 사진에 담았다. ‘허프포스트코리아’와 ‘네이버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바다생물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Curator’s Note
가장 깊은 기억, 바다가 숲에게
숲과나눔 네 살 생일을 축하하러 바다생물들이 기꺼이 육지로 올라왔다. 고향 바다를 떠난 인간에게 고향의 풍경을 보여주며 푸른 기억을 나누기 위하여다. ‘어머니 바다, 생명의 바다’에서 누대로 살아온 사진 속 다채로운 생명체의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비슷한 양수에서 자라선지 인간과 닮은 꼴도 보이고 까마득한 옛날의 시간을 간직해선지 인간보다 훨씬 지혜로워 보인다. 인간의 시계와 달력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구가 태어나고 바닷물이 넘실거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이어진 바다 생물들에게 육지의 인간들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땅은 이를 에워싼 바다의 수면 위로 잠시 솟은 땅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다는 알고 있었다.

장재연 사진전 <800번의 귀향>은 바다로 회유해 사랑의 생태계를 회복하려는 순연한 의지의 산물이다. 숲과나눔이 2019년에 주최한 <크리스 조 던 : 아름다움 너머>가 슬픔과 절망의 바다를 보였다면 <800번의 귀향>에서는 푸른 바다의 기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오직 바다만이 알 수 있는 파도와 해류를 관찰하고, 깊은 바닷속의 흐름을 알려주는 우주의 신호에 접속해 고요히 침잠하고 기다린 끝에 찍은 사진들이다. 바다와 바다생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정밀한 관찰을 통해 생명의 경이로운 순간을 시적인 통찰로 찍은 장재연 작가의 사진들로 인해 우리는 바닷속 생물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전시 타이틀 <800번의 귀향>은 모든 생명의 고향인 바다-집의 생태를 살펴 바다가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는 작가의 강력한 의지가 실린 말이다. 바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구호가 넘치는 가운데 ‘알아야 지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장재연 작가는 10년 이상 전 세계 바닷속으로 800여 번의 다이빙을 했다. 수많은 바다생물이 멸종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지구생명의 고향인 바다가 더 이상 망가지기 전 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가 바다생물을 촬영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바다생물 사진 촬영은 녹록지 않다. 수중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의 제약이 크고 다이빙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무겁고 까다로운 수중촬영 장 비를 잘 다뤄야 하는 것은 물론 바다생물을 만나기 위한 여러 위험 요소를 감내해야 한다. 또한 인간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바다생물이 나타나거나 포즈를 취해주지도 않기에 촬영의 8할이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처럼 극도로 제한된 촬영 환경 속에서 장재연 작가는 많은 생물이 군집한 넓은 바다 의 장엄한 풍경부터 2mm에 불과한 작은 생명까지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았다. 바닷속 깊이 내려가 인간중심의 편협함을 통찰하며 길어 올린 사진들 속에서 인간과 바다생물이 어우러져 군무를 춘다. 어떤 장면은 신비로운 우주 쇼 같다. 밤하늘의 별처럼 작은 생명체가 반짝이는가 하면 은빛 물방울들이 꽃처럼 피어난다. 장재연 작가가 과학자의 정밀한 관찰과 시적인 이미지 , 섬세한 언어로 빚어낸 <800번의 귀향>展은 모든 생명의 산실이자 무덤인 바다가 지구 생태계의 한 구성원일 뿐인 인간에게 상호공경의 절실함 을 아름다운 몸짓으로 전달한다.


글 : 최연하 (숲과나눔 에코포토아카이브 기획자)
생명의 고향으로, “800번의 귀향”
글 : 장재연
호기심에 끌려 바닷속으로 처음 들어가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입수하는 순간의 두려움과 공포는 바다생물을 만나며 곧 놀라움과 환희로 바뀌었다. "지구라는 행성 의 진짜 모습이 이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벼락처럼 머리를 쳤다. 태어난 행성의 실체도 모른 채 생을 마감했다면 헛삶을 산 것일 수 있겠다 싶었다. 바로 자격증을 따 고 늦바람처럼 다이빙에 빠져들어 기회만 있으면 바다로 갔고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800번의 다이빙을 통해 바다에서 만난 수많은 생명체는 결코 하등생물이 아니었고, 각각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존재였다. 모든 생물은 그의 생명과 삶을 유지하기 위한 관점에서 보면 진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존재다. 바다생물 입장에서는 오히려 인간이 특수 장비 없이는 5분도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하등생물에 지나 지 않는다. 생명의 근원은 바다에서 시작됐으니 바다생물들이야말로 ‘생명의 고향’을 지킨 아이들이고, 인간과 같은 육지 생물은 '집 나간 아이들'일 것이다. 더구나 집을 나간 이후에도 수많은 혜택을 받으면서도, 모든 배설물을 돌려보내며 고향의 안녕을 위협하는 배은망덕한 존재일 수 있다. 평생 ‘환경운동’이 늘 바로 옆에 있었 지만, 기껏 식용으로 사용하는 생선 몇 종류 이외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르면서 외치는 “바다를 지켜야 한다"라는 말은 허공의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바다생물 이 누구인지,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지 그들의 존재와 모습을 알리고 싶었다. ‘다이빙 기록을 위한 수중사진’이 ‘수중사진을 위한 다이빙’으로 전환되는 동기가 됐 다.

수중사진은 자연광이 극히 적어 스트로보에 크게 의존해야 하며 카메라 조작도 쉽지 않다. 피사체는 물론 사진가 스스로의 위치나 안정감조차 확보하기 매우 어렵다.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매우 제한적이다. 크고 무거운 장비로 인한 체력 소모와 험한 파도와 조류로 인한 위험성도 적지 않다. 피사체가 되는 바다생물의 크기는 1밀리미 터에서 십수 미터까지 엄청난 범위여서 각각 접사렌즈와 광각렌즈가 필요한데, 수중에서 렌즈 교환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번 다이빙에서 어느 한쪽은 포기해야만 한 다. 그나마 피사체로의 접근이 어느 정도 가능한 접사촬영의 경우와 달리 덩치가 큰, 그것도 만나기 매우 힘든 바다생물이 나타난 짧은 순간을 담는 광각 촬영의 경우 는 완벽한 구도의 사진을 얻는 것은 용왕님이 허락한 것이라고 할 정도의 행운이 따라야 한다. 먼 나라까지 힘들게 가서 수십 번 다이빙을 하며 기다려도 원하는 바다 생물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다. 이번에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다시 가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바닷속 지형을 살피고, 주변 다이버들 위 치를 확인하고, 바다생물의 특성을 생각하며 그들의 동선을 예상하고, 최선의 위치를 잡고, 그곳에 적합한 카메라 세팅을 하고 기다리는 것이 수중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10년 이상 긴 세월동안 세계 곳곳에서 800번을 내려가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바다생물은 어지간히 만나본 듯하다.

영화 그랑블루에서 주인공 자크는 바닷밑에서 다시 올라갈 이유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다 결국 바다로 돌아갔고, 또 다른 주인공 엔조 역시 죽음의 순간 바다로 돌아가 는 것을 선택했다. 다이빙을 하다 보면 어디가 진짜 우리의 고향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800번의 귀향’ 사진전을 통해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 가는 모든 생물은 아름답고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공유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